피프티피플 / 정세랑

2024. 1. 9. 00:48me


20231019


작품에는 제목처럼 50명(사실은 51명이지만)의 인물이 등장한다. 각 인물의 이름을 제목으로 한 50여 개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은 서로 연관이 없어 보이지만, 조금만 더 읽다 보면 서로 연결되어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서로에게 아주 직접적으로 연관된 인물들도 있고, 서로의 삶에 엑스트라 및 카메오처럼 잠깐 등장했다가 사라지는 인물들도 있다. 오히려 후자의 경우가 더 많다. 이는 마치 우리가 사는 세상처럼 느껴진다. 전체로 봤을 때는 주인공이 없지만, 아주 작게 사람 개개인으로 따지자면 각자 모두가 주인공인 이 세상. 작가의 말처럼 주인공이 없으면서 모두가 주인공인 소설이다.
이런 말이 있다. 서너 다리만 건너면 모두 아는 사이다. 서양권에서는 ‘케빈 베이컨의 6단계 법칙’이라고 불린다. 아무리 관계가 없는 사람들이더라도 6단계만 거치면 세상의 모든 사람은 서로 연결되어있다는 걸 뜻하는 법칙이다. 작품 속에서 서로 연결된 인물들을 보며 이 법칙이 자꾸만 떠올랐다.
많은 사람이 등장하는 만큼, 배경 또한 다양하다. 주요 배경은 수도권에 위치한 한 종합병원이지만, 인물을 통해 가지처럼 뻗어나가 다양한 배경이 등장한다. 아파트 분양 사무소, 골프장, 리서치 회사, 교도소 등. 소설에서 흔히 다뤄지지 않은 배경이다. 작가는 이 배경을 훑고 지나가는 것이 아닌 깊은 리얼리티를 보여주는데, 이는 소설의 몰입도를 한층 더 높여준다. 또한 단순히 일상적인 이야기만이 담긴 것이 아닌 데이트폭력, 가습기 살균제 피해 사건, 층간소음, 부실 공사, 싱크홀처럼 시사적인 이야기도 담고 있다. 그 사건 속에서 그들이 어떤 피해와 고통을 겪고 있는지도 보여준다. 직설적이고 또렷하게. 다만 사회적인 문제를 중점으로 다루는 것이 아니라 그 피해를 겪은 인물들과 그 인물의 관계를 다루고 있기에 마냥 무겁게만 느껴지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그 사건을 소품이나 도구처럼 사용하지도 않는다. 딱 적당하고 적절하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다 읽고 책장을 덮은 뒤 깊은 여운이 남는 작품은 아니다. 그 인물이 어땠었지…하는 기억만이 얕게 남아있다. 책장을 다 덮고 드는 이런 생각조차 이 작품의 완성이라고 생각한다. 살면서 우리를 스쳐 지나갔지만, 또렷하게 기억이 나지는 않는 사람들처럼. 작가가 만들어낸 허구의 인물이지만, 짧은 이야기 속에서도 엄청난 현실성을 부여해준 덕에 마치 살아있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은 것만 같다. 지금처럼 유유히 삶을 살다가 몇몇 인물들이 떠오를 것 같다. 그때가 되면 그 인물의 이야기를 펼쳐 읽어보려 한다. 각자 지내다가 가끔씩 떠올라 잘 지내냐며 묻는 안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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