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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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플젤리의 유통기한 / 박서련
마지막 첫사랑을 향한 생애 첫 애도누군가의 팬이 된다는 행위 자체가 이따금 이상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어느 한순간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나도 모르게 그 사람에게 사랑에 빠지게 된다. 마법처럼 당위성을 도저히 알 수 없는 일이다. 이렇게 시작한 마음은 우리를 아주 적극적인 사람으로 만들어 틈만 나면, 어떨 때는 하루 종일 그 사람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게 한다. 이런 과정은 처음에는 부족했던 좋아하는 마음에 대한 이유를 부여하는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 시간이 쌓이고 쌓여 나중에는 그 사람이 내가 살아가는 원인이 되고 결국 닮고 싶은 사람이 된다. 단둘이 만나 시간을 보낸 것도 아니고 심지어 상대는 나의 존재를 알지도 못하는데, 그 신비하고 기묘한 사랑이 사람을 이렇게나 바꿔놓는다.이 책은 이러한 마..
2026.04.04 -
사랑 파먹기 / 권혜영
잃고 난 뒤 후회하는 게 서러워서 이제는 그때그때 표현하려고 한다... 좋다고 잘하고 있다고 그러니까 오래 해(살아)달라고살아가려면 사랑하는 수밖에물건을 넣으면 무작위로 다른 물건이 되어 나오는 미끄럼틀을 다룬 , 가장 좋아하는 아이돌이 포토카드를 뚫고 나와 동거하는 , 평행세계를 그린 등. 수록된 대부분의 소설들은 평범한 일상에 환상성을 절묘하게 덧입힌다.작품 속 화자들은 대체로 우울과 절망, 체념에 갇혀 삶의 의욕을 상실한 채 하루를 살아내는데, 환상적인 장치가 작가가 이들에게 전하는, 더 넓게는 책 너머 독자들에게 전하는 최선의 선물 같이 느껴진다. 더불어 작가는 이들을 끝내 각자의 방식대로 삶을 이겨 내게 하고 작지만 단단한 의지를 불어넣어 준다. 끝없는 낙담의 늪에서 기어코 한 걸음 내딛는 인..
2026.04.04 -
피프티피플 / 정세랑
작품에는 제목처럼 50명(사실은 51명이지만)의 인물이 등장한다. 각 인물의 이름을 제목으로 한 50여 개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은 서로 연관이 없어 보이지만, 조금만 더 읽다 보면 서로 연결되어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서로에게 아주 직접적으로 연관된 인물들도 있고, 서로의 삶에 엑스트라 및 카메오처럼 잠깐 등장했다가 사라지는 인물들도 있다. 오히려 후자의 경우가 더 많다. 이는 마치 우리가 사는 세상처럼 느껴진다. 전체로 봤을 때는 주인공이 없지만, 아주 작게 사람 개개인으로 따지자면 각자 모두가 주인공인 이 세상. 작가의 말처럼 주인공이 없으면서 모두가 주인공인 소설이다. 이런 말이 있다. 서너 다리만 건너면 모두 아는 사이다. 서양권에서는 ‘케빈 베이컨의 6단계 법칙’이라고 불린다. 아무리..
2024.01.09 -
조이와의 키스 / 배수연
시집의 제목, 표지의 색, 시, 해설 모든 게 어우러져 편안한 시집이다. 초반에는 그저 마냥 예쁘기만 한 시들이 있는 시집인가 했는데 2부에 들어서는 순간 내 생각이 완전히 틀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각 부마다 색깔이 뚜렷해서 시집의 기승전결이 완벽하게 느껴진다. 해설은 잘 읽지 않는 편인데 해설도 정말 좋았다. 내가 시인이었으면 평론가에게 평생 고마워할 정도로. 해설을 읽고 다시 시를 읽어봤으면 좋겠다. 의성어가 들어간 문학 작품은 그리 좋아하지 않는데 이 시집은 적재적소에 넣어 잘 어우러지니까 시가 훨씬 생명력을 가지고 있는 느낌이었다. 시인만의 애틋하면서도 슬픈, 그러나 생기있는 장난이 돋보인 시집이다. 나에게 있던 "무엇"이 떠오른다기보다는 시인의 "조이"를 한없이 아껴주고 응원해주고 싶은 마음이 ..
2024.01.09 -
온다는 믿음 / 정재율
순수하다. 읽는 내내 생각했다. 시 속 서사와 그를 아우르는 시인의 문체가 순수하게 느껴졌다. 일단 제목부터가 그렇지 않은가? 그렇다고 순진하진 않았고 오로지 순수만이 담겨있었다. 짧은 소설을 한 편 읽은 기분이다. 시집에 엔딩이라는 말이 어울릴지는 모르겠지만은 엔딩이 정말 마음에 든다. 한참을 머물러있었다. 모리키 씨를 그토록 찾던 화자는 결국 다시 모리키 씨와 재회한다. 온다는 것은 언젠간 간다는 거겠지만은 화자는 이제 잘 알고 있다. 결국 또 온다는 것을. 의 힘을 알고 있는 것이다. 당신은 떠날 테지만 그럼에도 또 온다고 믿음.
2023.07.20 -
어떤 이름에게 / 박선아
진짜 오랜만에 읽는 에세이. 인터넷을 하다가 우연히 광고를 보게 돼서 새벽에 홀린듯이 주문했는데 후회없는 선택이었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채 써내려가는 편지의 수신자들의 이름이 궁금해지다가 나의 사람들을 대입해보게 만들었다. , , 파트가 가장 좋았다. 작가만의 귀엽고 따듯한 상상과 낭만, 그리고 시선이 가득 담긴 책. 마지막 를 읽고 책을 덮기 전, 수많은 같은 이름 중에 나에게로 와준 유일한 이름들을 한 명씩 떠올려보았다. 또 한번 고마워지는 기분.
2023.07.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