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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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자의 침대 / 박현욱
첫 번째이자 (현재까지는) 마지막인 박현욱의 소설집. 엄청 오랜만에 "진짜 잘쓴다."라고 육성으로 말하게 된 소설이다. 문장이 정말 좋다. 과장하는 거 없이 한결같이 잔잔하고 수더분하다. 기복없이 일정한 텐션으로 끝까지 이어나가 담백하고 깔끔하다. 조용하고 나긋하다가도 건조하게 이야기를 전하는 문체에 홀려 그리 동의하지 않는데도 설득 당하는 느낌이라,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진짜 오랜만인 기분. 바둑은 잘 알지도 못할 뿐더러 관심조차 없는데 는 홀린 듯이 읽었다. 관심 없는 건 아예 눈길조차 주지 않는 나로선 상당히 신기했던. 작품들 속 모든 인물이 결국 철저하게 혼자 남겨지는데 이 또한 아주 마음에 든다. 아쉬운 건 2003년 이후로 신작이 없으시다는 것... 서치를 오랫동안 했..
2023.06.17 -
세컨드핸드 / 조용우
시인의 것들을 내 것 삼아 조용히 어루만져보는 시간
2023.06.17 -
나를 참으면 다만 내가 되는 걸까 / 김성대
원래 이해가 안 돼도 같은 책은 연달아서 다시 안 읽는데 이 시집은 또 읽고 싶었다. 한 번 다 읽고 나서 그 다음 날 또 읽었다. 왠지 어떻게든 이해하고 싶어서. 다시 읽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슷한 시인으로 누가 있을까 계속 생각해봤는데 아무도 떠오르질 않았다. 그만큼 독특하고 낯설다. 사물이나 상황을 낯설게 하기를 넘어서 아예 생소하게 묘사하는데 뚱딴지 같지도 않고 매끄럽다. 문장도 희한하다. 조사도 많이 생략되어 있고 비문처럼 보이는 문장도 있다. 하지만 시를 읽다보면 어느정도 설득이 된다. 진짜 희한하고 웃긴 시집. 처음 읽었을 땐 포스트잇을 얼마 안 붙였는데 한 번 더 읽고 그에 거의 세 배는 넘게 붙여놨다. 아쉬운 건 후반부에 라는 연작시가 있는데 앞선 시들과는 다른 느낌이라 앞선..
2023.05.25 -
세계의 모든 해변처럼 / 하재연
예쁜 시의 전형
2023.05.25 -
제주에서 혼자 살고 술은 약해요 / 이원하
첫 시집이라는 거에 놀랐다. 이유는 시 속에서 신인답지 않은 여유가 느껴졌고 첫 시집 특유의 풋풋함이 전혀 느껴지질 않아서였다. 특히 요즘 젊은 시인들 사이에서는 주로 쓰지 않는 자연과 관련된 시어들을 많이 사용해서 더욱 등단한 지 꽤 된 시인처럼 느껴졌다.(아니나 다를까 이런 나의 생각을 예상이라도 한 듯 해설에 언급된다) 초반까지는 괜찮다가 가면 갈수록 시의 분위기, 구조가 상당히 비슷하고 거의 모든 시의 문장들이 경어체로 이루어져 있어 상당히 지루했다. 모든 시가 다르게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모두 하나처럼 느껴졌다. 종종 수록된 시 전체가 하나의 시처럼 느껴지는 시집들이 있곤 하다. 그 속에서도 각각의 시들이 독보적인 특수성을 가지고 있는데 이 시집은 글쎄. 그저 모든 시가 다 똑같아서 하나처럼 느..
2023.05.14 -
나랑 하고 시픈게 뭐에여? / 최재원
종로 3가에서의 죽음 / 최재원 미팅을 마치고 나와서 버스에 올라탔다. 아니 미팅이라고 했지만 사실 의사를 보고 왔다. 미팅이라고 해 봐야 의사밖에 없는데 왜 굳이 미팅이라고 해야 맘이 편한지 모르겠다. 속이 울렁거린다. 이럴 줄 알았으면 타기 전에 뭐라도 마시고 오는 건데. 컴퓨터도 괜히 가지고 왔다. 회차 정류장과 가까운 뱅뱅사거리에서 버스를 타면 웬만하면 사람이 없는데 오늘은 혼자라 눈치 안 보고 창문을 열 수 있는 맨 앞 두 자리가 이미 차 있다. 꽉 찬 버스에 어떵게 그 두 자리가 비어 있었으면 얼씨구나 가서 앉았을 텐데 두 명이 앉는 뒤의 좌석만 애매하게 한 자리씩 비어 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는데 눈앞에 있다. 하차 태그 단말기에서 뒤로 두 번째, 위로 약간 올라간 좌석의 복도 쪽에 앉은 ..
2023.04.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