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가 사랑했든 내가 사랑했든 / 송경아

2023. 4. 8. 22:27me

20230408


  자신 없이 말끝을 흐리는 모습이 참을 수 없이 사랑스러운데, 이런 나에게 너를 좋아하지 말라는구나. 아예 눈을 돌리지 말라는구나. 이렇게 성실하게, 이렇게 다정하게 자신도 모르는 채로 비수를 던지는구나. 왈칵 울음이 터질 것만 같아 나는 황급히 고개를 숙여 햄버거를 입에 물었다. 햄버거와 눈물을 함께 삼켰다.
  "음...... 그거...... 좋은 말이다...... 그렇게 애기해 줄게......"
  나는 음식을 입에 물고 우물대는 척하며 더듬더듬 말했다. 동일이가 안됐다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사촌 동생이 많이 힘들겠다. 잘해 줘."
  그 눈에는 있지도 않은 내 게이 사촌 동생에 대한 동정심이 넘쳤다. 아아. 얼마나 좋은 녀석인가! 동일이는 분명히 훌륭한 의사가 될 거다. 그리고 나는 훌륭한 의사의 처방전을 따르는 성실한 환자가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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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이었다. 누나는 아직 오지 않았고, 봄이 먼저 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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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읽고 육성으로 진짜 잘썼다, 라는 말이 반사적으로 나왔다. 과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절제되지도 않은, 덤덤하지만 약간은 과하고 상큼하다. 왠지 무거운 소설은 읽기 싫어 가벼운 소설을 고르고 있었는데 마침 이 책이 눈에 들어왔다. 한 남자를 동시에 사랑하는 남매의 이야기라는 소재는 흥미가 갈 수밖에 없었다. 성준이는 희서에게 고백하고 희서 또한 성준이로 인해 자신의 정체성을 알게 되며 둘이 사귀게 되는 이런... 전개로 흘러가진 않을까 기대하면서 읽었는데 전혀 아니었다. 희서를 근사하지 않게, 누가 봐도 별 볼일 없는 사람처럼 그려낸 게 좋았다. 그리고 성준이가 고백하는 장면도 질질 끌거나 절절하게 하지 않고  짧고 굵게 끝낸 것도. 독자가 이렇게 가겠지? 라고 예상하면 아니? 이렇게 갈 거야ㅋ 하며 틀어버리는, 독자를 자유자재로 가지고 노는 작가의 능력이 부러웠다. 첫사랑 동일이를 향한 성준이의 심리 묘사도 너무 좋았다. 너무 귀여움... 위에 적어둔 저 부분이 최애 장면이다. 자신의 정체성을 마침내 깨달은 성준의 갈등과 짝사랑하는 이를 향한 설렘과 열망을 정말 잘 표현했다. 누구든지, 얼마든지 공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 다음 사랑이 성준이를 찾아온 결말도 마음에 든다. 혹시 동일인가? 하며 기대했는데 아니었다.(이쯤 되면 내가 그냥 전형적인 k드라마 서사에 절여있는 건 아닌가 싶다) 첫 고백과 첫 실연을 마쳤으니 이번에는 첫 연애를 기대해 봐도 좋지 않을까. 간만에 읽은 청소년 문학인데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았다. 이 작가를 더 읽어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