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3. 27. 22:15ㆍme

"회사 갔다 오는 거야?"
"아, 저 회사 안 다니는데요."
"응, 안 댕겨? 그럼 뭐 하는데?"
"그냥 이것저것?"
"이것저것? 응, 그 전엔 뭐 했어?"
"PD요."
"뭐?"
"영화 만드는 PD요."
"그게 뭐 하는 건데?"
"돈도 관리하고 사람들도 모으고 뭐, 이것저것 다 하는 사람인데요."
"그러니까 그게 뭐 하는 사람이냐고."
"예? 아, 저도 이제 잘 모르겠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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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어디로 갈 거예요?"
"자주 가는 공원에 산책 좀 하다 갈라고요. 생각할 게 있거든요."
"저도 같이 갈까요?"
"크리스토퍼 놀란 영화 좋아하는 사람은 가도 별로일 것 같은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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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하고 싶다고 계속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더라고요."
"아직 젊으니까 뭐든지 하면 되지, 뭐. 아직 난 인제 하고 싶은 게 아무것도 없어. 늙으니까 그거 하난 좋다."
"진짜 하고 싶은 일이 하나도 없으세요? 그런 사람이 세상에 있어요?"
"나는 오늘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아. 대신 애써서 해."
"그러면 오늘 하고 싶었던 거는 콩나물 다듬는 거였겠네요?"
"알면 됐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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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도 꼬처러 다시 도라오며능 어마나 조케씀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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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보다 훨씬 젊었을 때 저는 늘 목말랐던 것 같아요. 사랑은 몰라서 못했지만, 내가 좋아하는 일만은 내를 꽉 채워줄 거라고 믿었어요. 근데 잘못 생각했어요. 채워도 채워도 그런 걸로는 갈증이 가시지가 않더라고요. 목이 말라서 꾸는 꿈은 행복이 아니에요. 저요. 사는 게 뭔지 진짜 궁금해졌어요. 그 안에 영화도 있어요."
"제가 멀리 우주에서도 응원할게요."
"고마웠어요. 오래오래 기억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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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가라, 내가 비춰줄게."
우리가 믿고 싶은 거, 하고 싶은 거, 보고 싶은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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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 엄청 귀엽고 사랑스러운 영화! 올해가 끝나가는데 올해의 영화라고 말할만한 영화가 없어서 고민이었는데, 이 영화가 선물처럼 등장했다. 모든 인물 하나하나 귀여웠다. 특히 국영 씨... 나의 마음 속에서 나도 모르게 나를 응원하고 있는 또 다른 나를 실체화한 게 좋았다. 평소 진중하고 무게감 있는 이미지로 각인된 김영민 배우가 순진무구한 얼굴로 연기한 국영 씨가 좋았다. 이런 연기도 할 줄 알다니! 심지어 장국영이랑 똑같이 생겨서 완전 김영민 배우를 위한 역할. 이 역할을 김영민 아니고서야 누가 할 수 있겠어. 마지막에 홀로 영화관에 앉아 찬실이 만든 것 같은 작품을 보고 박수를 치다 나가는 장면이 좋았다. 영화가 다 끝나지 않은 채 나간 것 같은데 국영의 관점에서는 어차피 마지막을 보지 않아도 완벽할 거라는 느낌이 들어서지 않았을까. 그 영화관 자체가 찬실이의 마음속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식으로 상영된 것 같지는 않고 찬실이의 시놉시스에 있는 영화가 찬실이의 마음속에서 상영되어 국영이 감상하고 그에 박수를 보내며 찬실이에게 용기를 주는 느낌! 마지막까지 완벽했다. 나의 국영 씨는 어떤 모습일지. 강말금 배우 연기는 물론이고 마스크가 너무 좋았다... 다른 작품들도 찾아봐야겠다. 윤여정 배우랑 호흡이 너무 좋아서 인상적이었다. 둘이 함께하는 장면은 영화가 아니라 그냥 일상 같은 느낌. 서로의 눈빛, 말투에서 그들만이 주고받고 있는 어떤 신호가 느껴졌다. 대사도 좋았다. 특히 있는 척하려 하지 않고 날 것의 그대로여서 더 좋았다. 한마디로 때 묻지 않아서! 동그란 사물을 계속 드러내는 것도 좋았다. 과일, 달, 전구 등등. 과일처럼 자연스럽게 달고 달처럼 은은하고 전구처럼 밝혀주는 착하고 순한 작품. 이 영화를 보게 된 내가 복도 많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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